우리가 정의하는 것들 따위는 철저히 계산된 사고 안에 머물러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대단히 이성적이에요. 정의된 개념 아래, 인간의 모든 조건들을 부합시켜야 하니까요.
인간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돈이며, 명예며, 스펙이며, 그리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있을지까지도요. 이러한 요인들은 인간의 본능 욕구만큼이나 강력해서, 때로는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조건들을 부합시키게 했던 정의 이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게 만들기도 하네요. 그동안 여기에 지배된 너무 많은 사람들을 겪어오지 않았나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냐면, 지금 이곳에 있어요. 지금 발붙이고 있는 여기 말이에요.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 부르네요. 그래서 현실의 정의는 지금을 살아가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조건으로 봤을 때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지 않나요.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어디에 내가 있는지 알지 못해요. 심지어는 앎이라는 인지를 떠나서, 어디에 있는지조차 보려 하지 않아요.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이 아닌 현실적인 조건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나이 든 노모의 깊은 주름이며, 간단한 악수만으로도 전해지는 어버이의 거친 손등이며, 시들어가는 꽃봉오리의 마지막 생명력 같은 거요.
살면서 우리들은 더해져만 가는 나이 이상으로 다채로운 경험들을 겪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다채로운 경험만큼이나 깊이가 더해지진 않아요. 진짜 인간의 조건으로 정의되어야 할 요소들이 무참히 외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몸의 부분들을 헤아려야만 해요. 그리고 몸의 부분만큼이나, 그것이 아주 작은 일부분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인간의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의 여부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해요.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인지될 수 없었던 몸과 함께, 몸을 지닌 인간에 눈 뜨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정의하는 것들 따위는 철저히 계산된 사고 안에 머물러요. 그래서 이런 것들은 대단히 이성적이에요. 정의된 개념 아래, 인간의 모든 조건들을 부합시켜야 하니까요.
인간의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돈이며, 명예며, 스펙이며, 그리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있을지까지도요. 이러한 요인들은 인간의 본능 욕구만큼이나 강력해서, 때로는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조건들을 부합시키게 했던 정의 이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게 만들기도 하네요. 그동안 여기에 지배된 너무 많은 사람들을 겪어오지 않았나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냐면, 지금 이곳에 있어요. 지금 발붙이고 있는 여기 말이에요.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 부르네요. 그래서 현실의 정의는 지금을 살아가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조건으로 봤을 때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지 않나요.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어디에 내가 있는지 알지 못해요. 심지어는 앎이라는 인지를 떠나서, 어디에 있는지조차 보려 하지 않아요. 현실적이지 않은 조건이 아닌 현실적인 조건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나이 든 노모의 깊은 주름이며, 간단한 악수만으로도 전해지는 어버이의 거친 손등이며, 시들어가는 꽃봉오리의 마지막 생명력 같은 거요.
살면서 우리들은 더해져만 가는 나이 이상으로 다채로운 경험들을 겪는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다채로운 경험만큼이나 깊이가 더해지진 않아요. 진짜 인간의 조건으로 정의되어야 할 요소들이 무참히 외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던 몸의 부분들을 헤아려야만 해요. 그리고 몸의 부분만큼이나, 그것이 아주 작은 일부분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인간의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의 여부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해요.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인지될 수 없었던 몸과 함께, 몸을 지닌 인간에 눈 뜨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