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상념이 정당화될 때
그것은 개인으로부터 정당성이 부여된다.
몸에도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는가?
몸을 소유한 개인이기에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의 상념이란 몸의 속성과 같지 않다.
그러니 우리가 몸에 부여하는 정당성과 무관하게
몸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았네요. 전통적으로 고수되던 통념은 부정당했고, 개개인에게 자리 잡혔던 상념 또한 전부가 붕괴되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근육통'만을 이야기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주관은 몸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크나큰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몸의 상태나 속성에 곧바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며, 지속적인 주관이 더해질수록 이 역시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학습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알아차림 없이 우리의 주관만 앞세우게 된다면, 우리는 그렇게 효과적을 몸을 주관하지 못할 겁니다.
한 개인의 상념이 정당화될 때
그것은 개인으로부터 정당성이 부여된다.
몸에도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는가?
몸을 소유한 개인이기에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의 상념이란 몸의 속성과 같지 않다.
그러니 우리가 몸에 부여하는 정당성과 무관하게
몸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았네요. 전통적으로 고수되던 통념은 부정당했고, 개개인에게 자리 잡혔던 상념 또한 전부가 붕괴되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근육통'만을 이야기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주관은 몸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크나큰 능력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몸의 상태나 속성에 곧바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며, 지속적인 주관이 더해질수록 이 역시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학습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알아차림 없이 우리의 주관만 앞세우게 된다면, 우리는 그렇게 효과적을 몸을 주관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