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아서, 그의 과거는 어땠었고, 그리고 그의 미래는 어떠할지 궁금하다면, 지금 우리에게 머물고 있는 현재만으로도 충분히 그 모두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마찬가지로 삶의 길이가 긴 것과, 그로부터 전해지는 삶의 깊이가 비례하는 거예요. 비록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체화된 형상을 확신할 수 없어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모든 곳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 과거에서부터 조금씩 자초했던 일이 아니었을까요.. 향기 가득 땅을 채웠던 흙과 싹의 생명을 갈아 시멘트를 덮고, 지갑과 배를 채우기 위해 구미에 맞게 가축을 양육하며, 그 어떤 산이나 나무보다 높은 철산을 쌓았을 때부터 말입니다. 인간의 몸과 생명은 지구의 입장에서 선일까요. 아니면 악일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가 몸을 알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몸을 알아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 넓게는 인간을 알아가기 위함도 아닙니다. 몸이 하나의 생명체라면, 모순적으로 영원하지 않을 몸의 영속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몸과 몸 안의 유기체 모두를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마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선 현재가 이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영속시키기 위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몸은 인간의 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숨쉬는 것 중, 어느 하나 몸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있나요. 몸의 까닭은 분명한 듯 분명하지 않지만, 지구상 모든 것은 몸을 통해 몸을 지켜왔습니다.
'몸'과 '인간의 몸', 그리고 '몸도 아닌 것'.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몸'이 아닌, 인간의 몸만을 위해 몸도 아닌 것에 책임질 수 없는 욕망만 키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위함의 여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몸'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 인간의 몸만을 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간 수없이 수많은 '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진정 봐야 할 몸은 '인간의 몸이 아닌 몸'일 겁니다. 공자의 '추기급인'은 단순히 마음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아니 마음보다 몸을 우선시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몸'을 통해서 '인간의 몸이 아닌 또 다른 몸'을 본다면, 이 까닭 없는 몸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영원한 현재의 시제 속에서 전 지구적인 몸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몸이 아닌 인간의 몸'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은 계속해서 회귀해야 합니다. 그러니 '몸'을 보세요.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아서, 그의 과거는 어땠었고, 그리고 그의 미래는 어떠할지 궁금하다면, 지금 우리에게 머물고 있는 현재만으로도 충분히 그 모두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마찬가지로 삶의 길이가 긴 것과, 그로부터 전해지는 삶의 깊이가 비례하는 거예요. 비록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체화된 형상을 확신할 수 없어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모든 곳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 과거에서부터 조금씩 자초했던 일이 아니었을까요.. 향기 가득 땅을 채웠던 흙과 싹의 생명을 갈아 시멘트를 덮고, 지갑과 배를 채우기 위해 구미에 맞게 가축을 양육하며, 그 어떤 산이나 나무보다 높은 철산을 쌓았을 때부터 말입니다. 인간의 몸과 생명은 지구의 입장에서 선일까요. 아니면 악일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가 몸을 알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몸을 알아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 넓게는 인간을 알아가기 위함도 아닙니다. 몸이 하나의 생명체라면, 모순적으로 영원하지 않을 몸의 영속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몸과 몸 안의 유기체 모두를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마치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선 현재가 이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영속시키기 위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몸은 인간의 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숨쉬는 것 중, 어느 하나 몸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있나요. 몸의 까닭은 분명한 듯 분명하지 않지만, 지구상 모든 것은 몸을 통해 몸을 지켜왔습니다.
'몸'과 '인간의 몸', 그리고 '몸도 아닌 것'.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몸'이 아닌, 인간의 몸만을 위해 몸도 아닌 것에 책임질 수 없는 욕망만 키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위함의 여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몸'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 인간의 몸만을 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간 수없이 수많은 '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진정 봐야 할 몸은 '인간의 몸이 아닌 몸'일 겁니다. 공자의 '추기급인'은 단순히 마음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아니 마음보다 몸을 우선시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몸'을 통해서 '인간의 몸이 아닌 또 다른 몸'을 본다면, 이 까닭 없는 몸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영원한 현재의 시제 속에서 전 지구적인 몸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몸이 아닌 인간의 몸'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은 계속해서 회귀해야 합니다. 그러니 '몸'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