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후기


FAS 기능해부학전문가 23기, 자의식을 두어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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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더 같은 과오를 범해야 각성하게 될까요. 몸이 가진 가능성이 있었잖아요. 내재된 가능성을 통해서 사람의 의미와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었잖아요. 연속된 시간들이 한때는 미래였을 과거와, 그리고 현재를 넘어서 곧 마주하게 될 미래와 같이.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서도, 몸과 몸의 일부분들은 분리의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의 지난 모든 경험들은 이렇게, 몸이 가진 가능성을 과분할 만큼 동일 선상에서 표현해주고 있네요. 그래서 몸을 알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보다,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까지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그게 의문으로 시작하든, 더한 미궁으로 들어가든, 이후의 과정이 무엇이든 기존을 초월한 보편성과 같아요.


 해부학은 그렇게 쉬워요. 하지만 반대로, 몸은 그만큼 어려워요. 해부학은 몸을 담고 있지만, 학문의 크기를 몸의 가능성에 견주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를 알기 위해 몸을 담고 있는 학문을 배우지만, 학문이란 인간의 마음과 같아서 때로는 이해되지 못할 만큼 가역적이기도 하네요. 그래서 우리는 어떡해서든 그것을 보고 들으며 앎을 지니기 몸부림치지만, 이미 한정된 범주 내에 있다면 그 이상의 여력을 발휘할 수 없어요. 베토벤이 단순히 화성학만 고집했다면,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듣지 않았을 거예요.

 해부학이 아니라 몸인 거예요. 자의식을 학문에 두지 말고 몸에 두어야 해요. 세상에 절대적인 학문은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몸은 우리 각자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존립하고 있네요. 부디, 이것을 놓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