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통해서 몸이 만족된다면 정신도 만족되어야 해요. 기본적으로 몸의 욕구들이 충족될 때, 우리의 감정도 한결 나아지지 않던가요. 이게 몸이 지닌 힘이거든요. 이 힘은 전혀 작지 않아요.
사람들은 정신이 육체보다 빠른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 반대에요. 정신은 그 속도를 평가할 수 없어요. 이건 오로지 움직이는 대상에게만 이야기되어야 해요. 움직임의 주체는 몸이니까, 속도의 가늠은 몸의 여부에 달린 거예요. 그래서 몸이 만족되면 정신이 만족되는 거예요. 육체가 먼저 가는 거고요. 정신은 그 다음에 와요. 물론 정신은 모든 과정에 있어요. 하지만 그것마저 이전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니, 매번 그 다음에 왔던 거예요.
해부학을 배우면 속 시원함과 답답함이 공존하게 돼요. 기존에 알지 못했던, 혹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해요. 그런데 동시에 너무 답답하거든요. 왜냐하면 해부학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되니까.
학문은 언제나 한계를 지녀요. 지금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안다면, 당신은 해부학을 제대로 본 거예요. 바꿔 표현하자면, 안 보이던 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니 얼마나 그것을 더 자세히 보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답답해지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던가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돼요.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이상이나, 지금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에 은연중 보기를 계속 원한다고.
몸은 우리의 정신보다 빨라서, 정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걸 쉽게 알 수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매번 해부학과 같은 이런 학문을 통해서, 또 한 번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배운 근육의 작용 이런 거 말고요. 몸의 작용이, 우리의 생각만으로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래도 몸의 일부분을 알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몸을 통해서 몸이 만족된다면 정신도 만족되어야 해요. 기본적으로 몸의 욕구들이 충족될 때, 우리의 감정도 한결 나아지지 않던가요. 이게 몸이 지닌 힘이거든요. 이 힘은 전혀 작지 않아요.
사람들은 정신이 육체보다 빠른 걸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 반대에요. 정신은 그 속도를 평가할 수 없어요. 이건 오로지 움직이는 대상에게만 이야기되어야 해요. 움직임의 주체는 몸이니까, 속도의 가늠은 몸의 여부에 달린 거예요. 그래서 몸이 만족되면 정신이 만족되는 거예요. 육체가 먼저 가는 거고요. 정신은 그 다음에 와요. 물론 정신은 모든 과정에 있어요. 하지만 그것마저 이전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니, 매번 그 다음에 왔던 거예요.
해부학을 배우면 속 시원함과 답답함이 공존하게 돼요. 기존에 알지 못했던, 혹은 생각조차 못했던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해요. 그런데 동시에 너무 답답하거든요. 왜냐하면 해부학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되니까.
학문은 언제나 한계를 지녀요. 지금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안다면, 당신은 해부학을 제대로 본 거예요. 바꿔 표현하자면, 안 보이던 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니 얼마나 그것을 더 자세히 보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답답해지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던가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돼요.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이상이나, 지금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에 은연중 보기를 계속 원한다고.
몸은 우리의 정신보다 빨라서, 정작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걸 쉽게 알 수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매번 해부학과 같은 이런 학문을 통해서, 또 한 번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배운 근육의 작용 이런 거 말고요. 몸의 작용이, 우리의 생각만으로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그래도 몸의 일부분을 알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