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후기


FAS 기능해부학전문가 26기, 응시로 머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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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응시할 수 있는가?'


 기억하고 있나요. 첫 시간에 남겨드렸던 빅 퀘스천에 대한 이야기요. 이 물음을 수업이 마칠 때 답할 수 있을지 물었었지요.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모두 마쳤으니, 이에 대해서 스스로 답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은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남겼던 물음에 대한 답은 어떻게 되나요.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갔던 자연에는, 나를 좀처럼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것뿐이었어요. 작은 조약돌이며 솔방울이며, 하물며 그 흔한 풀과 흙가지까지도요. 마치 그것과 나 사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먼 발치에서 엄마가 나를 불러도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요.

 이렇게 제대로 마주하면 떠나기가 힘들어요. 이따금 우리가 머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기가 이렇게나 어려워요.


 응시란 관계의 시작이라, 이제 막 시작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응시할 수밖에 없네요. 마주하지도 않은 채, 나의 모습은 어떻게, 그리고 또 그의 모습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이라고 하지 않듯, 응시란 진지함에 의해서만 발휘되는 마주함이에요. 제대로 직면하지도 않고 얼핏 보는 것은 응시를 위장한 회피예요.

 응시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네요. 아니, 정확히는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어요. 마주할 때만큼은 그와 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나에겐 내 앞의 그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것이 개입되겠나요.

 우리는 어느샌가 부모의 그늘도 되려 드리울 만큼 나이를 먹고 이만큼이나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오래전 우리가 가졌었던 순수함, 희망, 그리고 알 수 없는 끌림과 같은 것들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어떡하죠. '몸'의 형태는 어른이 되었을지언정, 그 본질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간직되었던 염원과 같아,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 우리보다 자연과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몰입된 응시만이 응시라고 부르는 거예요. 한때는 꼬마였던 우리 모두가 사소함 하나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경험했던 것처럼요. 그동안 우리가 '몸'을 응시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기는 했을까요. 눈 감을 때까지 나와 같이 가는 '몸'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응시하려고 하기는 할까요. 


 저의 빅 퀘스천은 답을 강요하진 않을 거예요. 직면 이전의 회피도 좋고, 보류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몸을 보려고 할 때만큼은, 가끔은 떠올려보는 거예요. 다른 무엇도 아닌 '몸'이니까. 그리고 그건 곧 '나'와 '너'니까.

 언젠가 다시 우리가 만나게 되면, 그 이야기를 들려줄래요? 응시했든, 그러지 못했든. 당신 스스로 몸에 머무르려고 했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