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바디투마인드
극소수의 분들만 알고 계시겠지만, 강의를 시작했던 계기는 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저와 바디투마인드를 만들었습니다. 지인들의 요구와 익명의 메일과 메세지를 받으면서, 2010년대 초반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저를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욕심이나 성취가 아닌, 진리나 본질 따위에 닿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제 여정은 제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강의 경력 10년이 되어갈 때 즈음, 저로 누적된 소문의 것들이 저를 또 한 번 만들더군요. 공교롭게도 코로나 시국으로 시간이 멈춘 듯했던 그 시기에 몇몇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운이 좋았네요. 실은 훨씬 오래 전부터 목표했던 모든 걸 이루었습니다.
몸에 가치를 두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택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반대해왔습니다. 흥미와 적성을 넘어서는 삶의 가치에 두어야 한다고 말이죠. 알다시피 제가 두었던 삶의 가치는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가르치는 지도자를 택했었고, 또 그래서 이 업계의 강사와 교수까지 다녀왔습니다.
마음이 아니라 몸 가는 대로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몸을 이해하는 일이 마음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요. 몸은 그 자체로 목적 지향적입니다. 그래서 몸에 몰입할수록, 몸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움직임의 최상위 단계는 운동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행동 아닌 것엔 몸의 목적 지향성까지 담기진 않으니까요.
몸을 가르치고, 또 몸의 학문을 가르친 기간 동안 제 몸도 참 많이 변해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르치는 일에 몸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만점자가 아니면 합격을 주지 않았던 제 까다로움 같이. 준비된 자가 아니면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제 강경함 같이.
그래서 대학에서 강의를 이어가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은 제가 원하는 현실보다 긍정이었으니까요.
몸을 따라갈 때
생각은 분명 행동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중 진짜 행동이 되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인간의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 대부분 역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요. 그러니 몸을 따라가면 절로 긍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머리를 거치려고 하고 있으니, 긍정이 인위로 바뀌고 몸의 움직임은 흐려지기만 합니다.
그렇게 어느샌가 가르치는 일이 재미 없어졌습니다. 가르침이 머리를 통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가르침이 아니게 되니까요. 진짜 배움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진짜 움직임은 설득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알지 못해도 이미 알고 있었고, 배우지 않았어도 이미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배움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언어 너머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움직이며 삶 속에서 부딪힐 때에만 진짜가 됩니다. 배움은 이해만으로 부족합니다. 직접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봐야 합니다.
각자의 몸으로부터
앞서, 오래 전에 목표한 모든 걸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그동안 사람들에게 증명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구태여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과거에 저를 찾아왔던 분들에게도 말했던 것입니다. 몸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김형욱을 찾았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몸의 지식과 지혜는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길을 먼저 걸었을 뿐, 누구라도 스스로 그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각자의 몸으로부터
2025년, 저는 이제 대학에서의 일도 마무리합니다. 이곳 일을 마치면 바디투마인드로 복귀하려 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으니 그러고 싶지 않네요. 추후에 다시 복귀를 하든, 안 하든, 저는 또 그냥 몸 가는 대로 살아가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